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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 성 자 GreenWoman 조회수 184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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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  자 2007년 06월 27일
글제목  산사, 붉게 타는 36.5℃ (이지은님)
 

산사, 붉게 타는 36.5℃



11월의 늦가을, 순천 선암사를 향해 가는 버스 안은 한적했다. 주변에 친한 사람들과 마음먹고 떠난 산행이었다. 차창너머로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뭇잎들이 눈부셨다.

두 시간 가량 달려 버스에서 내렸다. 파란 하늘. 두 눈 가득 펼쳐진 깨끗이 씻긴 세상. 상록수림이 쭉쭉 뻗은 맑은 숲을 산새 울음소리, 황토 빛 흙으로 잘 다져진 길을 따라 걷고 있으니 살갗에 닿는 차가운 바람마저 부드럽게 온 몸을 감싸는 듯 했다.

가을이 길게 드리운 사찰 뒤로 선암사로 이어지는 큰 굴목재와 작은 굴목재의 숲길로 발걸음을 향했다. 길이 조금 미끄럽긴 했지만 그다지 높지 않아서 서로 이야기하며, 잡아주며 함께 걸었다.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물결 따라 흘러가는 소리 따라 내 마음도 춤추듯 흘러갔다.

사실, 기행을 떠나기 전 떨쳐낼 수 없이 드는 생각들로 혼자 고민했다. 50을 갓 넘긴 전업주부, 난 지난 세월 무엇이었나.

더 이상 내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 커버린 아이들과 바쁜 남편을 보며 왠지 가슴 한구석이 휑해진다. 그들과 나란히 걷기 위해 홀로서기를 잘할 수 있을까. 자신 있고 행복한 노년을 맞을 수 있을까. 그런 고민 끝에 순간 참 외롭고 두려워졌다.

한발 한발 조심스레 조계산 자락에 나를 들여 놓은 지 한참, 낡은 안내표지판과 함께 산중턱의 보리밥 집이 눈에 들어왔다. 일행들과 보리밥에 산취, 익은 막걸리 한잔을 입에 털어놓고 담소를 나누며 일상의 찌든 때를 다소나마 씻어냈다.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.

누가 먼저라 할 새도 없이 우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.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지. 한번쯤 바쁜 걸음을 멈춘 채 하늘을 바라보고, 이렇듯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.

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이 자연 속에서 왠지 모를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왔다.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
고요한 정적으로 내려앉은 조계산 산사를 내려오는 길, 소나무 숲 능선을 따라 지난 밤 이 곳을 휘돌았을 바람소리가 들린다. 가을은 여름이 열정으로 타고 남은 재라고…. 산자락을 흔들며 털어내고 있는 붉은 재라고 한 산사람의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.

발아래 뒹구는 갈잎들도 발길에 밟히면서 바사삭 소리를 낸다. 나는 아직 남은 내 이야기와 상념들을 잘 여문 은행 몇 알과 함께 배낭에 주섬주섬 담는다.

‘이렇듯 행복도 쉽게 담을 수 있는 것이면 좋으련만….’

피식, 남몰래 헛웃음을 웃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. 일행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. 이번 기행을 통해 너무나 귀한 선물을 받았다. 마음 한 구석의 가시가 뽑혀 나가고, 이기적이고 연약한 사람이기에 여럿이 함께 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.

그리고 내 안에 36.5℃ 따사로운 가을 햇살, 그 온기로 아름다운 황혼의 시작을 꿈꾸어 본다. 물론 설렘 반 두려움 반이 뒤섞여 어린 소녀의 마음처럼 떨려오지만, 이제는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. 그러기에 나는 아직 사랑스럽고 내 주변에는 나와 삶을 함께 할 무수한 인생 친구들이 있지 않는가.

“아자, 아자, 파이팅!” 용기를 내어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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